작년 3월 초, 몇 년간 공들여 온 일들이 무산되고 가족관계 마저 삐걱대는 상황에 망연자실 멍하게 뉴스를 검색하고 있던 내 눈에 지난 몇 십년간 봐 왔지만 외면했던 와이제이 홍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학사학위를 따도록 도와주겠다는 문구, 지난 수십 년간 볼 때 마다 “그게 되겠어?” 싶던 마음이었는데 그날은 왠지 ‘그럼 나도 저기서 도움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릭해서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상담신청 란에 연락처를 덜컥 남겼던 게 30년 숙원을 풀게 된 첫걸음 이었다. 전화를 주신 선생님은 내가 재정 상황 때문에 당장 시작하기 어렵지만 지금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던 차 오래 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해내고 싶다는 넋두리를 다 들으시더니 학점은행제와 독학사 시험을 병행해서 학사학위를 취득할 계획을 정말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학점은행제는 뭐고 독학사는 또 뭐며 시험은 당장 5월에 있다는데 온라인 학습은 왜 필요한건 지 처음엔 들어도 모를 복잡한 이야기였다. 전화로 문자로 묻고 또 물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의 인내심과 친절함에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후에도 YJ 에서는 원서접수, 시험일, 학점인정 신청 등등 문자와 메일로 중요한 날짜를 꼭 챙겨 주셨다.

처음 YJ 교재를 받았을 때 요즘 교재 같지 않은 밋밋하고 투박한 디자인에 뭐지 싶었다. 그리고 이 많은 내용을 몇 달 만에 어떻게 익혀 시험 대비를 하나 싶어 막막했다. 하지만 인강을 들으면서 나름의 노트를 만들고 또 교재를 반복해서 읽다보니 처음엔 한 페이지 읽는데도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오고 집중이 안 돼 반나절이 훌쩍 지나고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점차 교재를 읽을 때 인강에서 짚어주신 포인트도 생각나고 학습 방향이 잡히면서 속도도 조금 붙기 시작했다. 또 문학작품을 매일 읽는다는 건 기대 이상의 위안을 주는 일이었다. 처음엔 시험을 통과하게 위해 한 줄 한 줄 간신히 읽어 내려갔던 일이 언젠가 부터는 읽으면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때로는 분해서, 또는 안타까워서 눈물을 훔치게도 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귀한 시간이 되었다. 끝없는 집안일과 잡다한 일들을 하면서도 이 일들을 끝내면 주옥같은 작품들 만날 시간이 온다 생각하니 입 꼬리가 올라가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하기 싫었고 해봐도 재미없었고 이리 저리 미루다 결국 발목 잡힌 영어발달사, 통사론도 있다. 재미없다는 변명으로 회피하다 결국 작년에 학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올해까지 끌고 오게 되었다. 작년 10월 4단계 시험 접수기간에 시험 보러 못가는 내 상황이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 후로 책을 다 싸서 책장에 넣어 두고 올 여름 3단계 시험을 준비할 때까지 보기도 싫었다. 3단계를 간신히 통과하고 4단계 시험 6과목을 준비하려니 이미 한번 봤던 과목들이라도 턱없이 시간이 부족함에 잠시 패닉하기도 했지만 독학사를 준비하셨던 어느 분이 합격수기에 ‘이렇게 준비해서 시험 보면 뭐하나, 될 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날 할 수 있는 만큼만 앞으로 가면 된다는 글을 읽고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4단계는 3단계 보다 기본 개념을 다룬 문제가 대부분이어서 주관식도 대부분 놓치지 않고 쓸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지금 이렇게 합격수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합격 발표를 확인하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30년 전 학업을 중단했을 때는 다시 돌아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 생각지 못했었다. 해가 갈수록 그 길은 점점 멀게 느껴지고 자신감은커녕 하고자는 의욕도 없어졌다.

그러나 가장 힘들던 어느 날, 자괴감과 공허함에 무너지고 더는 내려갈 데도 없다고 느껴지던 그 날에 불현 듯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숙제라도 해내야지 않을까 싶어 도움을 청했던 와이제이 덕분에 겁먹었던 거 보다 훨씬 수월하게, 오히려 위로와 용기까지 얻으며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꿈도 꿔본다. 편입? 대학원? 합격 후엔 들떠서 여기 저기 알아봤지만 일단은 학비가 부담 돼 잠시 보류하고 자격증과 공인시험 등을 준비하며 학비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감사하고 신나는 일이다.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든든히 옆에서 같이 뛰어준 러닝메이트 YJ 에 깊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