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사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또 하나의 능선을 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학사 시험은 암기보다는 교재를 이해하면서 공해야 주관식 문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와이제이의 교재가 해설식으로 집필되어 있어 주관식 문제는 시험을 잘 볼수 있었습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갑자기 굳게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 듯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결코 평탄한 길을 걸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제 말기에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해방이 되었고,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한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어수선함 속에서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 시절 여자는 대개 그 정도의 학벌이면 좋은 신랑감을
만날 수 있다고들 여기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교사상이 골수에 박히셧던 아버지께서는 딸이 홀로 객지에 가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셧습니다. 차선으로 지방 국립대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녀 공학이라는 이유로 극구 말리셧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여자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가정학과만 있는 초급대학이었습니다. 더구나 설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학업 분의기가 엉망이었습니다.
문학 소녀였던 내게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곳이라 여기고 미련없이 휴학을 하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그 일이 못내 후회가 되었고 언젠가 마무리를 해야겟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대가족의 장손 며느리인 내게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심히 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