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을 호출하는 본무주임님의 호출에 한달음에 달려간 자리에서 본무주임님은 “독학사”에 관련한 수기를 써보라고 권하셨고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편지 말고는 그 어떤 글도 써본 경험이 없음에도 부족하지만 한번 써보겠다고 호언을 하고서 거실로 돌아왔지만 막상 펜을 드니 그때는 무슨 용기, 객기였는지!
난 덩치는 아주 작은 편이지만 한번 뱉은 말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강단이 있음으로 생애 첫 수기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12월 3일 독학사 최종시험에 합격되었다는 사회복귀과 조병철 계장님의 연락을 받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좋았던지, 본무주임님과 함께 생활하는 공장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의 말들에 기쁨은 몇 배로 더 커져갔고 내 생애에서 누렸던 최상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는 순간 이였습니다.
2002년 6월 구속되어서 징역 20년을 받고는 대구로 이송을 와서 곧바로 목공장으로 출역을 해서 목공장에서만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내 삶이 터전, 지난 10년의 세월을 앞만 보면서 달려왔고 나름으로는 뜻함의 성취도 몇 번은 이루었지만 5년간의 노력 끝에 이룬 “독학사”합격은 지난 세월의 노력과 수고에 비해 너무도 과분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9년부터 일반출역수들도 “독학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주위동료들의 얘기를 듣고는 나 또한 그들과 덩달아서 1차 시험 원서를 접수했고 그렇게 5년간의 긴 장정을 시작했습니다.
그저 덩달아서 시작했기에 독학에 관련한 정확한 정보, 정의도 모르는 체 2009년, 2010년 2년을 별다른 성취도 없이 헛심만 보탰지만 한편으로는 얻은 게 많은 시간 이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독학사”에 관련한 모든 부분들을 알았기에 그 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하게 공부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낮에는 출역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은 결코 쉽지 않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TV 시청 시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공부하는 시간은 한, 두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뿐이라서 취침시간에는 잠을 자야한다는 관규 때문에 심적으로 더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곳 담안에서의 생활에서도 철저한 관규준수를 기본 바탕으로 두지만 진정 동료들의 배려와 무엇보다도 일선담당님들과 감독근무자님들의 깊은 배려로 취침등을 켜고서라도 한, 두 시간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위의 많은 배려와 스스로의 노력으로 매년 합격되는 과목이 늘어갔고 드디어 12월 2일 최종합격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담안에서의 뜻함은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근무자님들의 너그로운 배려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멀고, 높은 곳에 있는 희망이겠지요!
지난 시절, 여러모로 배려해 주시고 지도, 편달 주셨던 사회복귀과 “독학사” 담당자님과 보안근무자님들 그리고 함께 생활했던 모든 동료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 전하려고 합니다.
그간 “독학사”에 도전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의 기쁨이 어떠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분명 뜻함의 성취는 함께 하겠지요.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뚜렷한 실체를 가진 결과를 받아 손에 쥔 적이 없었던 방황된 삶에서 비단 “독학사”라는 한정된 결과물이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은 이제 미래가 나에게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건방진 생각 같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의 바람이라면 좀 더 많은 동료들이 “독학사”에 도전하고 큰 결실의 기쁨을 얻었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