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지방 국립대에 합격을 했다. 빠듯한 집안 살림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격을 하면 등록금을 내주실 거야 하며 내심 기대를 갖고 원서를 넣어 합격통지서를 받은 상황이었다. 내일이 등록해야 하는 마지막 날인데 집안에서는 싸늘한 기운만 감돌고 어찌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때쯤 오빠가 직장을 옮긴다고 퇴직금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사례금으로 주었는데 그것이 사기로 밝혀져 추운 겨울 아버지는 새벽녘 그 집을 찾아 가기도 하며 꽁꽁 언 현실을 녹여보려 하였건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나도 차마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다 지독한 몸살을 앓고 그렇게 대학의 길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아둔하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전문대를 가도 될 것을 소극적인 성격에 누군가에게 조언도 못 구하고 내 주장을 내세운다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는 환경에서 자라 속으로 속으로 앓다 앙금처럼 생채기가 되어 버렸다.
이 일로 인해 나는 항상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어 결혼 후에도 책을 가까이 하고 아이들 공부를 봐 주고 하여도 채워지지가 않았다가 우연히 독학사란 제도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을 할 때는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독학사공부를 할 무렵에는 남편의 일이 순조롭지 않아 내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살림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와 오전에는 밖에 강의를 나가고 오후에는 학원을 운영하고 그리고, 틈틈이 공부 하느라 정말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누구한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눈 뜨고 일어나면 오전에 한 시간, 점심 무렵 한 시간 그렇게 책을 보았다. 처음에는 힘들어 포기하고픈 마음이 굴뚝같고 이 늦은 나이에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회의감이 들기도 여러 번 이었는데 고2, 고3인 우리아이들에게 엄마가 힘들어 못하겠다는 말도 못하겠기에 꾹꾹 눌러 참는 중 와이제이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구원병을 얻은 것처럼 얼마나 힘든지 주절주절하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백수는 공부하지 않는다’ 라며 다른 여러분들도 힘든 과정 속에서 공부하고 있음을 말씀해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불평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공부할 때는 와이제이 교재를 시간을 두고 정독한 후 두 번 세 번 훑어보고 동영상으로 정선문제와 모의고사를 풀었다. 3단계에 고전시가론 과목을 신청하고 교재를 ***교재를 사서 보았는데 내용이 간략하여 책을 볼 당시는 좋았는데 막상 시험에 임해서는 가까스로 합격을 하였다. 이 일로 와이제이의 교재에 신뢰가 생겨 어디를 가든 책을 가지고 가서 몇 분의 시간이라도 펼쳐보고 또 펼쳐 보았다. 더구나 내가 본 와이제이 국문학과 교재는 깊이가 있어 공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꼭 시험이 아니어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시험평가영역 순서대로 되어 있어 공부하는데 무리가 없게 꾸며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든 우여곡절을 거쳐 4단계를 보게 되어 다시 예전 공부한 책을 보니 그래도 처음 정독한 것은 그대로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른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독학사를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나름의 방법을 말하라고 하면 처음에는 차분하게 정독하고 4~5번 훑어보면서 전체적인 내용과 잘 모르는 사항에는 세부적으로 보는 전략이 필요함을 말씀드리고 싶다, 방대한 부분에서는 기초적인 평가영역부분을 눈여겨보고 2단계를 보면서 전공서인 3단계 교재도 한번정도 봐주는 센스도 가져야 할 듯하다.
혼자 공부한다고 ‘독학사’라고 하지만 혼자 공부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모든 분들이 알겠지만 긴 여정에 혼자라는 생각은 쉽게 포기하고픈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와이제이에서는 적절한 시점에 전화와 문자로 흔히 있을 법한 상황에 대한 체크를 병행해 주어 힘을 내어 한걸음씩 내딛지 않았나 싶다.
4단계 시험이 끝나고 드디어 발표하는 날.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조심스레 확인을 했다. 총점합격제로 선택을 하였는데 성적표를 보니 문학비평론에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급히 와이제이에 전화해보니 총점에서 360점이 넘기 때문에 합격한 것이라 하여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니 근 30년 가까이 염원한 일이 이뤄졌다는 생각에 콧날이 시큰해지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남편에게 말을 하며 어찌할 줄 몰라 하니 남편 또한 내가 어려운 와중에 공부한 것을 알아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동안 남편은 경제적인 부담 속에서 공부하는 걸 알아 아침잠을 푹 자도록 배려해주어 그나마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지나고 나니 모든 일이 순간처럼 느껴지는 걸... 그래도 내 안의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시간과 용기가 이 시점에 있게 된 것에 무한한 감사를 할 뿐이다.
지금도 못다 한 공부를 하고 싶거나 저처럼 상처로 남아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시간을 관리하면서 나를 위한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백수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절대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시간 또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갖고 나의 꿈과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나와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라는 것이다. 우리 가족 중의 누구라도 좌절과 희생만으로 가치가 평가된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이라도 힘을 내어 자신의 꿈과 희망에 한 걸음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