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인생이란,,,참으로 정복될 수 없는 험난하고, 거대한 산과 같았다.
농부의 삼남삼녀 자녀중 넷째로 태어나, 가난하기 그지없는 집안에서 대학을 간다는 것은 ..그저 죄송함을 무릅쓰고 뻔뻔해 지는 길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삼년재 간호학과 그리고 자취나 하숙비를 줄일 수 있는 집 근처의 대학으로 등하교하는 것.
내가 고등학생 될 무렵 아프기 시작한 바로 아래 여동생은...내가 대학을 입학할 때도 ..언니인 나를 부러워하며 누워 있었다. 길레안바레라고 추정만 되는 근육병을 앓고 있던 동생은 동공을 움직여 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약도 쓰지 못하고, 몇 년을 그렇게 환자용 침대에 누워있었고...내가 간호학과를 선택한 것은 내 언니가 간호사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픈 동생 때문에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힘겹게 진학한 간호학과...것도 2년제 전문대학 속에서 3년제 간호학과를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걸어서 20분이 걸려 기차역까지, 300원짜리 비둘기호 기차로 20분 남짓, 그리고 또 걸어서 20분이 걸려 학교. 그렇게 등하교를 하였고, 점심은 싸온 도시락. 아침에 커피 100원짜리 한 잔. 점심먹고 100원짜리 커피 한 잔. 나에게 하루 용돈은 500원이면 되었다.
그렇게 힘겹게 졸업을 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회라는 큰 물 속에는 정말 똑똑하고 많이 가진 자들이 즐비하였다.
그러면서 내 자신이 하염없이 작아지는 느낌으로 몇 년을 살았고, 주변에 수두룩한 4년제대학 졸업생들을 동기로 둔 나에게 있어 학력이란 것이 돈보다도 더 긍지를 주는 것이로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고, 나는 결심했다. 학사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방송통신대학교 간호학과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내 언니가 밟은 코스대로 따라가기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입학은 했지만, 나에게 너무나 힘든 벽이 있었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출석 수업과 과제물 제출과 출석 시험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 게다가 나는 신규 간호사로써 주어지는 근무를 행할 뿐, 근무를 신청하거나 바꾸어 달라고 하기에는 오기나 뻔뻔스러움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흐지부지 한 학기를 보내고, 다음 학기에는 펑크가 나기 시작했다.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급여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직장에서의 업무를 소화하는 것이 더 급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다음 학기에는 휴학을 신청하였고, 그렇게 내 자존심을 뭉개면서 간호사 생활에 전력을 기울여 갔다. 그거야 뭐 다음에 시간나면 하지뭐 하는 마음으로...그때까지만 조금만 주눅들자..하면서.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나는 잊어버렸다. 학사학위에 대한 나의 소망을.
남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보건교사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바쁜 생활속에 정신없던 나는,,,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 나이듦의 신호인지, 주변에 신경을 자꾸 쓰게 되는 것이었다.
아 저 선생님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학교에 오셨네 ,아깝다.
아 저 선생님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오셨네, 아깝다. 대학교수라도 하지.
아 저 선생님은 뭘 저렇게 공부를 계속하시나.
아 저 행정실무사는 4년제 중국어과를 졸업하셨구나....
그런 관찰 속에서 나는 나를 그들과 비교하게 되었고, 내 이 학력으로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드디어 생각이 났다. 방송통신대학교 간호학과 휴학중...
하지만 이 바쁜 일상속에서 나는 방송대를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직장생활에 두 아이의 엄마에...게다가 애들은 너무나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나이..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동생 친구가 독학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동영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독학사이기 때문에 정말로 책과 나 혼자만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바로 시작을 했다. 좀더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면 정보를 가지고 쉽게 합격할 수 있었을 텐데.
책은 방송통신대 교재를 준비하였고, 공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두 시간, 길면 세 시간 정도를 공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7개월정도를 공부하고 첫 독학사 시험을 보았다.
국어 점, 간호윤리와 법 점. 나머지는 과락...ㅎㅎㅎ...
쉽지가 않구나.......쉽지가 않아....
총점합격제에서 과목별 합격제로 바꾸고 다시 도전... 다시 1년을 부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 보는 전날 둘째 아이가 토하고 설사하고....결국 두 번째 시험에는 응시하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좌절...쉽지가 않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사건 속에서 길이 막힐 때도 있고 힘겨울 때도 있고 ...있구나.
다음 해에는 공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다시 도전하였다.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방통대를 할 수도 다른 뭔가를 찾을 수도 없이 이미 시작된 길이었기 때문에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도전한 시험에서는 간호과정 한 과목만 패스...
내참...열심히 했는데...이상하다...세 과목이나 더 해야 한다...이런식이면..일년에 한 과목꼴로 삼년 뒤에나 학사학위를 안아볼 수 있겠구나...
어느 날, 인터넷 쇼핑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와이제이 학사고시!
잉~~??? 이게 뭐지?
인터넷 동영상 강의가 있구나..시간표도 관리해 주고, 불합격하면 합격할 때 까지 관리도 해 주는 구나.
나는 얼렁 전화를 해서 등록을 하였다. 다른 싸이트 몇군데도 알아보았지만 왠지 마음이 가는 곳이 와이제이 학사고시 였고, 전화를 받아 상담해 주시는 전**선생님도 아주 친절하셨다. 강의를 앉아서 보고 들을 시간이 없다고 하니 엠피쓰리로 자료를 보내주셨고, 중간중간 친절한 전화로 공부를 독려해 주셨다.
그래...이번에는 잘 선택한 걸꺼야.
나는 와이제이에서 알려 주는 공부 방법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반복해서 읽어보라 하였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 번 읽는 것으로 하였고,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다. 출퇴근 운전을 하면서 강의를 듣고, 퇴근하면 그 부분에 해당하는 교재를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렇게 한 싸이클이 끝나 한 과목을 끝내면 다른 과목을 강의 듣고 교재를 찾아 보고 하였다. 그렇게 3달 정도가 지나니, 한 과목당 강의를 두 번 정도 들을 수 있었고, 암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교수님의 설명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문제지를 다운받아 출력하였고 풀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기본이 부족했는지 맞추는 문제보다 틀리는 문제가 더 많았다. 간호연구 같은 경우는 아예 다 틀렸다.
대학국사 역시 마찬가지..너무 어려웠다.
다시 강의 듣기. 두 달.
시험보기 한 달 전이 되었을 때, 그 동안의 느긋한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사실 와이제이 학사고시에 등록한 것만으로 안심을 하고, 등록했으니 합격할 수 있을꺼야 하면서 내 자신에게 느긋할 것을 명하였던 것 같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겨우 강의를 이해하는 수준이지 암기도 안되어 있고, 응용은 더더욱 안되고...
하는 수 없이 나는 문제집을 풀며 외우며 한 달을 보냈다.
집안일을 해 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직장을 다니며, 밤에는 몇 시간 겨우 공부하는 것으로 한 달을 치열하게 보냈다.
시험날이 되었다.
컴퓨터용 싸인펜을 준비 못해서 들어가면서 살려고 했는데, 지난번 시험과는 다리 파는 장사꾼이 보이질 않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테이블을 놓고 주욱 서 있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었고, 어느 단체에서 응원을 온 것 같았는데 나에게 뭐 필요하냐과 말을 걸기에 싸인펜을 얘기 했더니, 가져가라고 한다. 너무 감사히 받았는데, 물티슈까지 준다.. 아..이렇게 고마울 때가...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때 물티슈에 적혀 있는 것이 와이제이학사고시.
이그그....와이제이 아니시죠? 하고 누군가 질문했던 것이 그제서야 생각이 난다. 긴장을 한 탓에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와이제인줄 알았으면 반갑게 인사라도 하고 감사하다는 말이라도 하는건데 말이다.
그때 못한 인사를 지금 합니다. 와이제이 정말 감사합니다! *^^*
그렇게 시험을 보았고, 너무 힘들어서 집에 와선 바로 잠을 잤고,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일상에 젖어 내가 언제 독학사 공부하던 사람이더냐는 식으로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와이제이입니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다음주 월요일이 합격자 발표날이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 순간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합격했을까, 또 뭔가 과락이 있을까..시험이 쉽지는 않았어. 연구는 공부 안한 부분도 나왔고, 국사는 주관식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못 쓴 것도 있어...
만일 불합격이라도 실망하지 말자. 또 도전하면 되지 뭐. 여태 5년을 도전해 왔는데..하면 되지뭐...그래..우울하거나 자책하거나 하지 말자..그래도 도전했으니까 그걸로 ‰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