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적은 재능과 긴 시간이 만나서 이루어지기에...’

1. 들어가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슈킨)

2010년 5월 20일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입니다.
그 날 오후 2시의 법정에서 저는 실형 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발이 땅 위에 못 박힌 것처럼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고, 머릿속은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문득, 뒤돌아보니 망연자실한 표정의 가족들이 붉어진 눈과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감싼 채 장승처럼 서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 딸의 모습이 떠오르자,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져 낯선 방에서 뜬 눈으로 지새웠던 교도소에서의 첫날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날개 잃은 새처럼, 저는 도무지 한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생의 여정이 절반쯤 이르렀을 때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인도해 줄 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단테의 신곡-지옥편 중)
많이 두려웠습니다. 아마도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내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 당시에 저는 독학사 시험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늘 숲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오히려 더 늪 깊숙이 빠져들어가듯, 저는 변화된 일상에 매몰된 채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흡사 시간을 동그랗게 말아 끝없이 굴리는 것처럼, 시간도... 공간도... 저의 삶도...
흐르기를 멈추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1년의 가혹한 세월들은 제 스스로를 뒤돌아 볼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아픔은 아픈 만큼 그 사람을 키우고, 일상의 빈곤은 감사함을 아울러 가르쳐 주는 법이니까요.






2. 독학사 시험에 도전하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행동은 우리를 결정한다.(조지 엘리엇)

절망과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내면서 저는 하나, 둘 마음속의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체념은 항상 인간의 힘과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었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체념하는 법을 배우면서 저는 점점 미래의 제 모습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헛되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고,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 매일매일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거짓말처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와 함께 생활 중인 동료가 보고 있던 와이제이 학사고시 교재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와이제이 학사고시 교재를 통해 독학사 시험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탁’치며 기뻐했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심화해서 공부하고 싶었고, 제게는 늘 부족하게 여겨지던 인문학적 지식도 쌓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독학사 영어영문학 학사시험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목표가 생기니, 희망이 싹텄습니다.
물론 그동안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교과목들-가령, 영어학개론, 영어발달사, 고급영문법, 영미문학, 영미소설, 영미시 등-을 한꺼번에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와이제이 학사고시의 교재들이 독학사 합격이라는 긴 여정에 ‘든든한 길동무’ 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4년 남짓 남아있는 수감시간과 새로운 배움에 도전해 보고 싶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3년 안에 영어영문학 독학사 시험에 반드시 합격하리라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기본학습교재인 와이제이 학사고시 교재들의 내용을 숙지하고, 영미(英美) 문학작품 100권을 읽겠다는 목표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교도소 내 인쇄공장에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독학사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저녁에 주어지는 자유시간과 밤에 수면시간을 줄여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TV를 보며 편하게 쉬는 저녁 한나절 동안, 그리고 동료들이 곤히 잠든 늦은 새벽까지, 저는 라면박스로 만든 책상 위에 책을 펴놓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던 유럽과 미국작가들의 끝도 없는 이름들 앞에 좌절하기도 했고, 상상을 초월하게 두꺼운 소설작품들과 암호처럼 적혀있는 알쏭달쏭한 시들 앞에서 절망하기도 하였습니다.
몸이 고단하고 피곤한 날에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꿈이 있었기에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꿈은 적은 재능과 긴 시간이 만나 이루어진다는 고향 아버지의 격려를 되새기며, 저는 공부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했습니다.
“풍파 없는 항해는 얼마나 단조로운 것인가!
고난이 더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고난은 전진하는 사람의 진실한 벗이기에!“
너무 힘들어 잠시 주저앉을 때마다 저는 니체의 저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낙담이 쌓여 캄캄해진 방이 새로운 열정으로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간절한 열망은 어떤 공허보다 강합니다.
확고한 목표는 때론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합니다.
긴 시간 공부해야만 하는 수험생들에게 위기는 수시로 찾아오는 반갑잖은 손님이지만,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딱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인내와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막다른 길이라 여겨졌던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길이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독학사 시험을 준비하며 느낀 점

인내와 용기를 결합한다면 우리에겐 시간과 희망이 생길 것이다.
열정을 동반한 노력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윈스턴 처칠)

독학사 시험공부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렵기만 했던 영어문법과 영문학에 조금씩 눈이 떠지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3년 동안의 학습계획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첫해에는 우선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와이제이 학사고시의 영어영문학 관련 각 과목 교재들을 ‘통독->정독->다시 통독->정독하며 요약’하는 방식으로 과목당 4회독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19세기와 20세기의 주요 영미(英美) 작가들의 작품을 구해서 최대한 많이 읽으려 노력하였습니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조셉 콘라드, 사뮈엘 베케트, 셰익스피어, 알프레드 테니슨...
읽고 또 읽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위대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지금 이 순간 선명히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고생했었는데...
막힐 때면 와이제이 학사고시 교재의 관련 부분을 펼쳐들고 참고하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두 번째 해에는 4단계 최종시험만을 남기고 차례차례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였습니다.
독학사 시험은 기출문제가 공개되지 않아서 제대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는 기본교재를 충실히 공부하고, 폭넓게 작품들을 읽은 덕분에 모든 시험을 잘 치러낼 수가 있었습니다.
독학사 영어영문학과의 본격적인 전공시험인 2단계 때는 영어학개론, 영문법, 중급영어, 영국문학개론, 19세기 영미시, 19세기 영미소설 6과목을 선택했고, 각각 95.5점, 95점, 95점, 94점, 89점, 100점을 받았습니다.
독학사 3단계 시험부터는 주관식 한 문제의 배점이 10점으로 비중이 커지지 때문에 주관식 문제를 틀리면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듭니다.
3단계 때에는 영어발달사, 고급영문법, 고급영어, 미국문학개론, 20세기 영미시, 20세기 영미소설 6과목을 선택했고, 각각 75.5점, 95점. 100점, 94점, 92.5점, 100점을 받았습니다.
저는 최종 4단계 시험을 한해 뒤로 미루고 부족하다고 느낀 전공과목들을 좀 더 공부한 뒤에 최종단계에 응시키로 결정하였습니다.
19세기, 20세기 영미소설은 모두 만점을 받은 반면, 영어발달사, 영미 시(詩) 등의 분야는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최대한 다양한 영미 시들을 읽고 암송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틈틈이 영어학에 대해서도 보충학습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2013년 11월에 독학사 영어영문학과 4단계 시험을 치렀고, 평균 92.7의 성적으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와이제이 학사고시 기본교재에 집중하면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공부한 덕을 본 것 같습니다.
최종합격의 기쁨만큼이나 열정을 동반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찰스 디킨스와 에밀리 디킨슨을 구별하지 못해서 쩔쩔매던 제가 지금은 위대한 작가들의 고전을 늘 가까이 하며 위안과 지혜를 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4. 마치며

낮이 가져간 모든 것들을 밤이여, 돌려다오.(버지니아 울프)

2013년 12월 2일은 제 인생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최종합격소실을 들었던 그 날, 저는 지난 3년간 제가 흘렸던 땀과 불면의 밤들을 떠올리며 펑펑 울었습니다.
언젠가 사랑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긴 것 같아서 뿌듯하였습니다.
땅콩처럼 작은 방 한쪽 벽에, 매달린 듯 나있는 조각창 너머로 어둠이 드리운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겨울 밤하늘에는 작고 빛나는 별들이 가득합니다.
별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순간은 어쩌면, 밤의 가장 어두운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위대한 개츠비> 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밤은 후회로 가득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렇게 많은 밤들을 노력하고 방황하였나 봅니다.
제게는 너무나 막막하기만 했던,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수형생활 중에 독학사 시험을 준비하며 지냈던 무수한 밤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등대처럼 제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의 이 짧은 글은 합격의 기쁨을 말씀드리고자 쓴 글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후회로 가득했던’ 어떤 밤들의 기록, 그저 저의 노력과 방황의 ‘항해일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가 “나는 왜 공부해야하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문득 떠올릴 수만 있다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쓴 이 초라한 고백이 작은 보람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힘들더라도, 모르더라도, 계속해서 좋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합니다.
끝내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답을 고민하고 찾는 와중에 우리는 이미 꽤 멀리까지 가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생의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독학사 시험이라는 ‘거친 항해’를 준비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조지 오웰이 갈파했듯이 “인간의 자질로 찬미하는 것들 중 상당수는 사실 재앙이나 고통, 어려움에 맞서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끝으로, 독학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순간마다 저에게 큰 격려가 되어 주었던 생텍쥐페리의 문장으로 합격수기에 갈음 드릴까 합니다.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발견한다.
정신의 바람이 진흙위로 불어야만 마침내 ‘인간’은 창조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