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심장병과 간경화 등의 여러 가지 질병과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이런 형편의 제가 독학사 제도를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국문학과 법학의 두 개 학위입니다.

그동안 한심한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던 중 저는 동료로부터 귀가 솔깃한 정보(?)를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독학사 취득을 위한 도전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고 서둘러 교재 구입도 하였습니다.
머릿속에는 벌써 4단계 전 과정을 모두 합격하고 난 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맙니다.
제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수험생으로의 계획과 실천은 분명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씩 공부하면서 보고 또 보고 외우고 또 외우면서 해 나간다면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은 공부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앓고 있던 병들은 점점 악화되었고 오랜 시간 책을 보는 것이 힘들어 때로는 하루 종일 누워책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글씨가 보이지 않아 그때까지 공부했던 것들을 몇 시간이고 외우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는 자신감을 잃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과정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대부분 그 답이 부정적인 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지칠 때에는 더욱 그러했지요.
이때 저에게는 이런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 버리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공부가 어려워 포기하려 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족의 얼굴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이 안에서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제 스스로를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못난이로 만드는 꼴이라 여겼습니다.
한밤중에 책을 보다 졸음이 밀려 올 때나 아픈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때나 가족이라는 존재는 각성제이고 진통제였습니다.
아마 이보다 더 강한 각성제나 진통제는 없을 것입니다.
도전과 성취로 이어졌던 각 단계별 시험은 대부분 노력한 만큼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독학사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은 책 하나에 의지해 합격했다는 것을 아시고 도전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맨 처음부터 두 개의 독학사 학위를 취득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합격하여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국문학 전공을 공부할 때는 사전 정보도 미흡했고 어떤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교재에 있는 내용만 외우고 이해하려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단순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요령도 생기면서 한 단계 한 단계씩 통과를 해 나갔습니다.
저는 한창 때인 삼십 살 때까지는 정말 머리가 좋았습니다.
한 번 외운 것은 절대 잊지 않았고 몇 마디만 들어도 금방 이해가 되는 형편이었지요.
그런데 여러 병들을 안고 살아가다보니 조금 전에 기억하고 이해했던 것들도 어느 사이에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머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반복 학습뿐이었습니다.
머리에서 자리를 잡아 더 이상 떠나가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여 그 내용을 익히는 것이었지요.

첫 번째 국문학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 덕분에 높은 점수를 받고 합격하였습니다.
합격 발표가 있은 후 저는 더는 독학사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나온 과정이 너무나 저에게는 어려웠던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또 다시 제 앞에는 ‘독학사 응시 요강’ 책자가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가장 눈에 들어온 전공은 법학이었습니다.
법학은 국문학과 달리 익숙지 않은 낯선 용어들이 꽤나 많기에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년의 계획을 세우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비록 한 차례 경험이 있었다지만 처음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만만치 않았고 앞서 국문학 공부를 할 때 느꼈던 것처럼 수없이 포기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끝내 목표한 대로 2년 만에 법학사 시험을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저의 독학사 취득 과정이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나 공부하기 좋은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겐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어느덧 오십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히 빼앗긴 시간, 잃어버린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얻을 수 있는 시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얻은 것이 많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회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실패와 성공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작품이 아닐까요.

시험이 끝난 요즘, 저는 그동안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병들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한 곳들이 많아 걱정이기는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독학사!
말 그대로 혼자 공부하여 학사학위를 받는 제도입니다.
대학에서 교수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4년 동안 편히 공부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독학사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전공을 선택한 후 그 전공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황소걸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느리게 가지만 끝내 목표한 곳에 도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시간 내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의 공부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