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우 학사학위취득 성공


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얼굴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 볼 수 없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가을하늘을 볼 수도 없다. 또 몸은 밤낮을 구별할 수도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그러나 정신만은 높은 이상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며 살고 있었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보면 참 길었던 시간이다. 중도 실명을 한 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맹학교에 가서도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그래도 대학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여러 돌파구를 찾다가 93년에 처음 독학사 시험에 도전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내가 그것도 혼자서 공부하기란 참으로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점자 교재가 없어서 일일이 점자 도서관이나 자원봉사자를 찾아다니며 녹음을 하고 점자책을 만들어서 공부를 했다. 회사 다니던 동생이 퇴근해 오면 책을 읽어 달라기도 하면서. 그래도 첫 해에는 14과목을 통과했다. 무난히 2~3 년 만에 국문학과 학위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적당히 머리도 좋은 것 같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될 거라 생각했지만 문학비평론이 문제였다. 아무리 공부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 번을 쳐도 문학비평론은 패스를 못해서 학위 인정 시험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며 전쟁 같은 결혼생활 15년이 지났다. 평범하고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마음 한켠은 언제나 독학사 시험에 매어 있었다. 대학이란 말만 나와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이 가슴이 따끔거려 왔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학사고시 공부하다가 말았다는 말도 이제는 그만 할 때가 되었다. 나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올해는 꼭 독학 학위를 따야겠다고 결심하고 옛날 기억을 되살려 yj학사고시에 전화를 걸었다. 여러 가지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난 합격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보았다. 담당 선생님의 자세한 상담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아주 감명 깊게 다가왔다. 말만 들어도 시험에 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골칫거리였던 문학비평론 시험을 안 쳐도 되는 행운이 생겼다. 올해 대구 미래대 노인복지과를 졸업한 것이 학점 인정을 받아서 바로 종합시험만 치면 되었다. 오랜 독학사 교육으로 많은 정보를 갖고있는 YJ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 희망적이었던 것은 과거와 다르게 교재가 텍스트 파일로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이 파일만 있으면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나 노트북을 통해 소리로 들어가며 공부할 수 있다. 당장 교재를 구입했다. 올해의 모든 일정을 마지막 학위 인정 시험에 맞추고 계획을 짰다. 그러나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나로선 공부에만 열중할 수 없었다.



밤에 일하는 나는 낮에 피곤하면 잠을 자야 했고 복지관에서 하는 연극에 배우로 활동하였고 자원봉사로 오카리나 공연을 다녔다. 그래도 짬짬이 틈만 나면 노트북을 켜고 책을 들었다. 우리는 공부를 하면서 밑줄을 그을 수 없어서 그때그때 들으며 이해를 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십대라는 나이가 참 웃기는 나이였다. 나는 끝없이 머릿속에 공부 내용을 집어 넣으려고 하지만 머릿속은 아주 완강하게 공부 내용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은 잠이 와서 자리에 눕지만 머리는 깨어있는 이상한 현상도 생겼다. 시험을 앞둔 마지막 1주일은 휴가를 내서 공부했다. 의자에 앉으면 거의 8시간을 화장실 가는 것 외엔 일어나지 않았다. ‘올해 안 되면 내년에 하면 되지느슨하게 생각하다가도 이런 스트레스 받는 시간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한 번으로 끝내고 싶었다.


실명하고 20여년 만에 밥 못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신경은 날카로워서 남편은 내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숨도 크게 쉬어보지 못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만큼 난 꼭 합격하고 싶었고, 합격할 거란 열망을 강하게 가질수록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지나고 보니 공부에 몰두했던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아주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던 44살의 나이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으니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무엇보다 중년의 나이에 미래를 바라보고 꿈을 꿀 수 있었다는 것이 의미 깊은 일이다 


앞으로 학사고시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굳이 조언을 하자면 기본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모든 공부의 기본은 교과서이다. 나는 교과서를 두 번 들었다. 동영상 강의와 문제집은 교과서 내용을 모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영상 강의는 몇 번 듣다가 교과서 듣는 것에 시간을 더 할애했다. 문제집은 풀수록 헷갈려서 주관식만 풀었다. 책을 듣다가 잠을 자더라도 이어폰은 항상 귀에 꽂고 있었다. 교과서를 세 번 보려고 했는데 두 번밖에 못 본 것이 아쉽다.


교과서로 전체적인 내용 파악이 다 된 후에 요점정리를 보니 내용이 훨씬 머리에 잘 들어왔다. 마지막 점검은 목차를 보며 내용을 정리했다. 목차에는 그 책의 개략적인 것을 훑어 볼 수가 있다. 아무튼 올해는 18 년을 별러 오던 독학사 시험을 끝낼 수 있어 홀가분하다.


끝으로 합격을 하기까지 도와주신 yj와 최우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내 삶의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나님께 이 영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