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스무살의 한 여학생이 3년제 간호과에 입학하면서 다짐한 학사학위를 30년이 지난 2016년에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1년 모자란 기간이 30년 동안 제 가슴에는 응어리져 있었고 실력 우선이라며 학위는 애써 외면하고 왔지만 그 응어리는 어떤 상황이 되면 열등감이 되어 올라왔습니다.

집안 형편상 제 힘으로 대학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전면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좁은 생각에 가족들과 의논도 없이 간호전문대학을 선택하였습니다.

3년 졸업하고 취직하여 돈 벌어서 다시 공부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졸업 후 병원에 취직하여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였습니다. 접어둔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이왕이면 간호학 보다는 앞으로 오는 시대에 발맞춰 영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통대 영어영문과에 원서를 내고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임신하게 되면서 입덧이 심하여 일상생활을 못할 지경이 되었고 직장은 어쨌든 다녀야 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5년간 다닌 병원에서 퇴직 후 다시 공부하여 공무원이 되었고 자상한 남편과 공부 잘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가 “엄마 ○○전문대학 나왔어?” “우와~~엄마 진짜~~”하며 어이없어 했습니다.

똑똑하여 특목고에 입학한 큰 아이는 그동안 엄마가 직장에서 맹활약상을 펼치고 TV에도 출연하여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학입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엄마의 학벌을 보니 기가 막혔던 모양입니다.
“엄마는 공부는 잘했는데 외삼촌들도 있고 시골 농사짓는 집안이라 대학 갈 형편이 안돼서 3년간 전면장학금 약속받고 간 거야” 라고 했는데 큰아이는 “엄마 그건 핑계야 엄마가 더 잘했어봐 좋은 대학도 장학금 받고 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심하게 충격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공부를 특출하게 더 잘하지 못한 저 자신 보다 가정형편을 핑계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16년 막내가 대학에 가게 되었고, 이제 제 삶을 위한 그동안 응어리로 남아있던 학사학위에 재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왜 재도전이냐고요? 제가 15년 전에 와이제이 학사고시의 문을 두드리고 준비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3년제 간호학과 졸업생은 마지막 단계인 학위취득시험만 합격하면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6과목 중 3과목만 합격하였고 그 후 직장일이며 아이들 키우며 학벌 보다는 능력이라고 외치며 승진도 하고 토익 공부를 하여 직장에서 선진응급의료를 배워 오라고 미국 대학에 6개월 연수도 다녀오는 등 나름 바쁜 세월을 보냈습니다.

직장에서 응급처치 강의도 나갈 일이 많아졌고 미국 선진 응급의료를 배워온 저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이력서 상에 간호 전문대학 졸업이라는 최종학벌은 늘 저를 기죽게 만들었습니다. 청중이 학사 학위도 없는 저를 무시하는 것 만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현 직장에서 나름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경력도 20년 이상이라 그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제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학벌 열등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와이제이에 전화를 하게 되었고 담당선생님께서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합격한 과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여 접속해보니 놀랍게도 2002년도에 합격한 과목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이제 3과목만 하면 된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교양과목인 국사와 전문과목인 간호지도자론, 간호윤리와 법 이렇게 세 과목을 선택하여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였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했으면 시간이 충분했는데, 직장에서 승진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느라 상반기를 보내고 7월부터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사는 워낙 광범위하고 분량이 많아서 시간을 제일 많이 할애하였습니다.
한국사공부를 하면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응시해봐야겠다고 생각하여 같이 준비했습니다.

간호지도자론은 현재 직장에서 위치에 맞게 좋은 지도자가 되는 길을 공부하는 것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고 아주 만족하게 공부하였습니다.

간호윤리와 법은 3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고 모르는 부분을 재인식하게 하는 좋은 공부였습니다. 와이제이에서 발행한 교재와 강의만 믿고 외우고 쓰고 반복하였습니다. 시험배점이 객관식 60점, 주관식 40점인데 주관식은 1문제당 10점씩 배정되어 부담이 컸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주관식이 나올지 모르니 전체적으로 외우고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사고시 시험 일주일전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당일 바로 정답이 공개돼서 3급에 합격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1주는 전공과목에 올인하였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2배속으로 하여 두 과목 전체를 듣고 책까지 보는데 4일 걸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2일간은 주관식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시험 당일 도시락을 싸들고 시험장으로 향하는데 수능 치러가는 학생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학사고시 준비생은 간호사들이었고 모두 저보다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교시 국사 시험을 치르는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보다 어렵게 느껴졌는데 다행히 주관식은 쉬워서 모두 맞출 수 있었습니다.

간호지도자론은 와이제이에서 강조하는 것이 거의 출제되어서 수월하게 느껴졌고, 간호윤리와 법은 좀 난해하였는데 특히 주관식 문제가 4문제 중 1문제 정도 쓸 수 있었고, 나머지 3문제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 쓰는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시험 치르고 나오면서 2과목은 합격 할 것 같은데 1과목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년에 한 번 더 하지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발표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컴퓨터에 접속하니 전과목 합격으로 떴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혼자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두 아이에게 전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기쁜 일은 친정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전하였는데 이젠 친구 같은 두 아이에게 먼저 전하게 되었습니다. “얘들아 엄마 학사고시 합격했다. 이제 학사엄마가 됐다!” 아이들은 “대단하다 너무나 자랑스럽다 엄마” “헐쩐당 엄마” 이렇게 답이 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시험 치르기 전부터 “너는 붙는다. 이제까지 쳐서 안 붙은 시험 있나” 하며 당연히 합격할거라고 믿고 있었고, “너는 나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렇게 떨어질거 같다고 하더니 그럼 떨어져야 할 거 아니냐” 며 놀렸습니다.

저는 대학원 진학이 꿈입니다. 학사고시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가 가능한 야간 대학원을 검색해보니 올해는 원서접수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독학사 고시를 발판으로 좋은 대학원을 진학하여 늦은 배움의 길을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

직장과 가정생활로 시간이 없으신 분은 독학사고시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와이제이에서는 담당자가 전화로 정보를 알려주고 메일 보내주고 격려도 해주니까 계속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혼자서 하기에는 막막한데 와이제이가 함께 해주니 많이 수월했습니다. 뜻있는 분들의 많은 도전을 응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